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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정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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9월초, 제대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방을 갈아엎는 것이었다. 사진에 보이는 건 빙산의 일각.

2년 3개월 간의 여정동안 쌓여 집으로 가져온 박스 안의 물건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. 어릴 적 빨래하기 전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뒀던 잡동사니들을 꺼내듯, 하나하나 꺼내어 앞으로 머물 공간을 찾아봤다. 주머니가 요술상자라도 되는지 물건은 나오고 또 나왔다. 그간 소중하게 간직했던, 앞으로도 그러리라던 추억과 눈물이 담긴 어떤 물건들은 갈 곳을 잃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. 하찮게 여기던 어떤 물건은 이제 보니 추억이 많이 담겨있어 나무상자 안에 곱게 담겨졌다. 갈 곳 잃은 나의 추억들. 방황하는 나의 흔적들.

의외로 박스 안의 물건들은 손쉽게 정리가 끝났다. 이제 박스에서 방 전체로 시선을 돌려본다. 고요히 숨은 채, 먼지와 세월의 무게만을 더해가는 녀석들을 모조리 꺼내 정리하기로 했다.

슬프게도 내게서 잊혀졌던 물건들
아무런 기억도 없는 물건들
단지 쓰레기
근 십년간 기억 속에서 날 괴롭히던 슬픈 추억의 물건
그간 써왔던 셀 수 없는 노트와 메모
수많은 편지
보기만 해도 쥐구멍으로 숨고 싶어지는 추억어린 물건
어릴 적 친구와 우정을 맹세하며 바꿔가진 장난감
맞지 않는 옷
수백 장의 사진
수백 롤의 필름
2년 3개월 동안의 외박, 휴가 복귀날 급한 마음에 훔쳐가듯 쓸어 담아갔다 내팽개친 수백 장의 음반
천권 가량의 책
처치 곤란한 영화, 음반 브로마이드
엎질러진 스파게티마냥 엉킨 오디오 배선
때마다 버릴까 고민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는 영화잡지 몇 년 치
무수한 먼지
가구 밑에서 나오는 동전 하나

이제 더 이상 나올 건 없겠지 싶으면 어디선가 또 다른 사연을 가진 물건이 튀어나오곤 했다. 마치 누군가가 슬쩍 밀어놓고 간 것처럼.
모두 꺼내어 놓고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보니 폐허가 된 도시 속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었다. 공허하고 아득하다. 이제 이걸 어디에 어떻게 정리해 넣어야 할까.
정리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. 사실 물리적으로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. 단지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. 이십사년간의 추억들이 이틀 만에 정리됐다면 그건 너무 빠른 것이겠지.
끝내 정리하지 못한 먹먹함이 내 방 한 켠에 남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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